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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악가를 꿈꾸는 박주연 학생(가운데)은 성악 입문 3년이지만 끼를 살리며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 꿈을 키우는데는 가족의 적극적 역할도 있다. 김은형씨(오른쪽) 부부는 주연이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하며, 동생 하연이는 자칭타칭 최고의 후원자란다. ©김형훈 |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박영석(47) 김은형(44)씨 부부.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는 게 축복이라고 말을 건네는 이들이다. 교육 공무원으로 만난 이들 부부에겐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두 딸이 있어서다.
그러나 한때는 힘겨웠고, 사는 건 그야말로 침울하기만 했다. 첫 애는 임신 32주만에 세상과 마주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미숙아였기에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는 생활이 이어졌다.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다 보면 미숙아망막증이 발생한다고 하더군요. 결국 시력을 상실했어요. 처음엔 받아들이질 못했죠.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늘 슬퍼하며 지냈어요.”
김은형씨는 기자에게 마치 오래전 이야기를 하듯 술술 풀어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건네는 그의 얼굴은 너무 환했다. 어둠을 뚫고, 첫 애를 위해 기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결국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서일까. 그들 부부는 네 살이 될 때 첫 애를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첫 애 이름은 박주연이다. 주연이는 시각전문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로 진학을 했고, 3월이면 고2가 된다. 그런데 왜 곁에 두지 않고, 먼 곳까지 보냈을까.
“제주에 있는 장애인학교는 종합특수학교예요. 제주에서는 시각장애 학생으로는 한반을 구성하지 못하죠. 통합학급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요. 주연이는 모든 정보를 소리로 접해야 하는데, 쉽질 않았어요. 고심 끝에 다른 지역에 있는 시각전문학교를 택한거죠.”
주연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부모와 떨어져야했다. 그런 주연이를 위해 은형씨는 매주 비행기에 올랐다. 하늘에 쏟은 돈은 이루 셀 수 없다.
은형씨 부부는 주연이가 건강하게만 살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주연이가 커가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은형씨 부부에게 주연이는 특별한 애였다. 소리에 민감하고, 미각도 특별했다. 음식의 미묘한 차이를 감별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소믈리에를 택해야 하나?
“부모라면 자식이 어떤 분야에서 남보다 뛰어날지를 생각하죠. 소믈리에도 생각을 해봤죠. 그런데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맑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주연이는 노래를 할 때 행복을 느끼거든요.”
주연이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가 문득 은형씨의 머리에 떠오른 이가 있었다. 소프라노 오능희씨였다. 그와는 여고 동창으로 음악시간이면 멋진 가곡으로 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친구였다.
“주연에게 성악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인 오능희 선생을 떠올리게 됐어요. 주연이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어요. 우리 딸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친구에게 연락을 한거죠.”
이때부터 소프라노 오능희씨는 주연이를 직접 지도하게 된다. 그러나 주연에게는 모든 게 험로였다. 악보와 가사를 볼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는 가능하지 않은가. 발성부터 모든 걸 녹음을 하고, 레슨이 끝나면 녹음한 걸 다시 듣는다. 수십번 반복을 하곤 한다. 악보와 가사없이, 소리만으로 가능한 이유는 또 있다. 주연이 곁을 지키던 동생인 하연이가 거든다.
“절대음감이거든요. 언니는 조율이 틀린 피아노 소리도 정확하게 잡아내요.”
주연이가 성악과 인연을 맺은 건 올해로 3년에 불과하다. 방학 때만 소프라노 오능희씨를 만난다는 게 아쉬움이다. 그래도 지난 2014년 제주대에서 주최한 아라콩쿠르 중학부에서 1등없는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젠 오능희씨의 열정과 주연이의 열망이 더 큰 꿈을 향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오능희씨는 꿈을 하나 둘 만들고 있는 제자에게 지난 22일 제주칼호텔에서 열린 한미모로타리클럽 창립 13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주연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성악가가 미래의 성악가를 위해 준 작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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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주만에 주연이를 세상에 내놓게 돼 긴 아픔을 겪었다는 김은형씨. 하지만 이젠 주연이가 있어 기쁨이 되고 있다. 그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주연이를 최고의 무대인 독일에 보내고 싶다는 꿈을 털어놓았다. ©김형훈 |
“주연이는 더 큰 꿈을 그리고 있어요. 성악가를 꿈꾸는 주연이의 꿈이 실현됐으면 해죠. 더 높은 세계무대에도 서고요. 기회가 되면 오페라 고장이면서 복지수준이 높은 독일에서 음악을 배우게 만들고 싶어요.”
엄마 은형씨는 올해는 주연이와 마주할 기회가 더 많아졌다. 비행기를 타고 오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제주도교육청이 서울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1년간 직원교류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은형씨 부부와 주연이와의 만남은 벌써 17년째다. 이들 가족을 기쁨으로 끌어주는 중심엔 물론 성악가를 꿈꾸는 주연이가 있다. 은형씨 부부는 앞으로는 버스가 아닌, 국내선 항공기가 아닌, 국제선을 타고 주연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 곧 오기를 손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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